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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ju

철 없던 젊은 시절, 난 아줌마들을 경멸했다..-펌-

해피쵸코 2005. 8. 2. 15:22
                    철 없던 젊은 시절, 난 아줌마들을 경멸했다

- 조 명 자 -

내 나이 오십 하고도 하나에 접어 들었다. 바스라져 가는 여성의 향기, 좋은 시절 다 갔다는 한마디 말로 자조하는 인생의 끝자락에 접어 든 셈이다. 엄마 품을 파고 들며 온갖 재롱 다 떨던 아이들 저희들 세계로 들어간 간 건 이미 오래 전.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세련된 단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외롭고 쓸쓸하고 허망한 나날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 오십 이후 아줌마들의 일상이다.

풋풋한 이십대 처녀 때에는 사십 이후의 아줌마들은 여자가 아닌 줄 알았다. 아름답고 싶은 욕망도, 사랑을 느끼고 나눌 수 있는 감성도 모두 소진된 할머니인 줄 알았다. 오십 이후의 아줌마들은 마른 고목 등걸인 줄 알았다. 자식 빼면 의미가 없는 줄 알았다. 심지어는 부부생활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아줌마, 그악스러울 정도로 맹렬한 삶의 모습. 난 이런 아줌마들이 무섭고 싫었다. 물건을 사고 팔 때나 사정없이 거친 언사로 아무 데서나 누가 듣거나 말거나 시끄럽게 떠들 때 나는 같은 여자라는 게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보다 더 싫었던 것은 버스나 전철에 올라 타면서 다른 사람을 밀치며 빈 자리를 향해 돌진 하는 모습을 볼 때였다. '그거 조금 서서 가면 다리 뽀사지나?' 천박한 그 모습에 혀까지 차며 인상 찌푸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저렇게 늙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만든 장면도 여러 번 있었다. 아줌마들의 놀이를 볼 때였다. 관광버스 세워 놓은 주차장 옆에서, 자리 비좁으면 화장실 옆도 마다 않고. 술기운 벌겋게 오른 얼굴로 광란의 춤판을 벌일 때였다.

꽝꽝 울리는 스피커를 틀어 놓고 뽕짝 메들리를 신나게 불어 제끼며 끼리끼리 붙잡고 춤출 때, 나는 여자망신 다 시키는 것 같아 울화가 치밀었다.

어느새 나도 사십대를 지나 오십줄에 들어섰다. 그리곤 그 때 진저리치게 싫어 했던 아줌마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살고 있다. 버스나 전철에 탈 때 다른 사람을 밀 정도는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빨리 타서 빈자리를 차지하나 눈알을 굴리는 것은 똑같다.

다른 사람이 올세라 잽싸게 달려가는 것도 똑같다. 핑계는 많다. 바로 퇴행성 디스크에 걸린 탓이었다. 뼈가 늙어 척추 마디가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허리가 아프니 그 통증이 바로 다리로 내려왔다.

심할 때 있고 덜할 때 있다. 버티긴 해도 그 통증은 말도 못했다. 얼마전 서울에 가려고 지하철 4호선을 탔을 때였다. 수술 후 7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6개월에 한번씩 종합검진을 받으러 서울 병원에 간다.

아침 10시 반에 검사예약을 했기에 범계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아직 출근시간대인 지하철 안은 만원이었으니 찡겨가지 않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래도 혹시? 누가 제일 먼저 일어날 것 같은가? 그때부터 내 앞에 앉아 있는 승객들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신문을 읽는 사람, 정신없이 곯아 떨어진 사람, 자투리 시간 이용해 일어 공부를 하는 사람…. 각양각색이었다.

나이 든 아저씨가 먼저 일어날까? 저 젊은이가 먼저 일어날까? 역주변 특징까지 살폈건만 불행히도 내 앞줄 사람들은 끄떡도 안했다. 한 십여 분 지나니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구운 오징어 뒤틀리듯 두 다리를 번갈아 꼬아 봤지만 갈수록 통증은 심해졌다. 너무나 아파 비명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내 아픔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나이 오십에 비해 머리칼도 새까만 편이고 작은 키에 얼굴도 동안이라 누가 중늙은이 대접해 양보 할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 어딜 봐도 환자 티가 안났으니 양보는 언감생심이었다.

통로는 비어 있는 편이라 신문지 깔고 앉아 갈만은 했다. 그러나 젊은 여편네가 나 보란 듯 신문지 깔고 앉아 빈자리 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얼마나 꼴불견인가?

차마 그 짓만은 할 수 없었다. 검사시간에 쫓기기는 하지만 할 수 없다. 나는 중간에 내려 역구내 의자에 앉아 쉬었다. 그러기를 서너 차례 반복한 끝에 간신히 병원에 도착했다.

그 때 나는 예전에 경멸했던 아줌마들을 생각했다. 그 아줌마들 역시 지금 나처럼 겉만 멀쩡하고 속은 만신창이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빈자리 나기를 기다리다가는 날 샐 테니까 안면몰수 하고 덤벼든 것이 나와는 다른 점일 뿐.

쓴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구나. 팍팍한 살림에 남편 챙기고 자식 챙기려면 극성을 안떨고 배기랴? 한푼이라도 아껴 더 먹이고 더 입히고 싶은 마음.

간절한 가족사랑에 제 체면, 부끄러움 살필 여가가 있었을까? 몽그리고 몽그리다 풍선처럼 터져나온 삶의 일탈. 달팽이 관속에 박혀 살다 뛰쳐나온 세상 바깥. 온세상이 제 것처럼 보이던 객기에 누가 보건 말건 추는 어설픈 춤에 질펀하게 녹아든 것은 아닌지….

겪어 보니 사십 지나 오십 육십에 접어든 아줌마들에게도 젊은이 못지 않은 뜨거운 사랑의 열정이 있더라.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의 욕망도 여전하더라. 애절한 가슴앓이 또한 다르지 않더라.

젊음이 눈부신 그대들이 설령 눈치 채지 못할 지라도….


저도 풋풋한 나이 때에는 4, 50대 아줌마들은

여자로써의 욕망도 꿈도 사랑도 없는줄 알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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