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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마른 물고기처럼

해피쵸코 2008. 4. 17. 13:45

마른 물고기처럼

 

                                               나희덕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이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인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 얼음 속에서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빛나던 눈도 비늘도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莊子]의 <大宗師>에서 빌어옴.

"샘의 물이 다 마르면 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남게 된다.  그들은 서로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시어 준다. 하지만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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